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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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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목적 및 연혁


본 회는 육상경기의 건전한 보급 발전과 우수한 경기자를 양성 발굴하여 국위선양은 물론 시 체육 문화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검도는 전투의 수단으로 성립되고 발전된 것으로, 현대에는 정신수양과 신체단련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이 되었다. 그러나 검도의 중요한 요소가 예절(禮節)과 수도(修道)하는 마음가짐, 기검체일치(氣劍體一致)인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무도(武道)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무도나 무예가 성립된 것은 구석기시대보다 훨씬 이후의 일로서, 기원은 고대(古代)의 병기와 병기를 운용하는 방법으로서의 병법에서 찾을 수 있다. 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사기(史記)》 <황제본기(黃帝本記)>와 <고공기(考工記)>에서 발견된다.

검도라는 말은 2000년 전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 검도 38편이 기록된 것에 처음 나타난다.그 밖에 사법(射法) 42편, 수박(手搏) 6편이 기록되어 있는데, 검도는 법(法)이라고 부르지 않고 도(道)라고 불렀다.

본국검은 신라 사람 황창랑(黃倡郞)이 창안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칼춤을 추다가 백제의 임금을 찌르고 죽음을 당한 그의 공적을 기리어 후인들이 그의 검법을 흉내 내어 칼춤을 춘 것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본국검은 칼춤과의 연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술과 예술이 혼연일체가 된 무예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정책적으로 무(武)를 천하게 취급하였으나 민간에 의해 여러 고유의 검법이 비전(秘傳)되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쇠잔해졌다. 한국 고유의 검술이 계속되지 못하고 침체된 것은 그 이후로도 계속된 당쟁과 숭문천무(崇文賤武)의 기풍, 그리고 서구문명이 침투하는 과정 중이었기 때문이다. 신식군대의 편성과 훈련 등은 결정적으로 한국 고유의 검법과 검술을 사장(死藏)시켰다.

현재의 검도는 한국에서 전수한 검술이 일본 내의 전란 과정 속에서 발전되었고, 나중에는 스포츠로 체계화된 일본의 검도가 역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강제 수용된 검도는 8 ·15광복 후 상당 기간 동안 침체된 상태였으나, 점차 검도 자체가 가지는 운동의 진가를 인식하여 한층 국제화되고 스포츠화한 운동으로서 8·15광복 후 새로운 세대의 호응을 받아 스포츠로서 정착되었다. 1953년 11월 대한검도회가 재조직되어 대한체육회의 가입단체가 되었다.

검도 경기에는 단체경기와 개인경기가 있다. 경기자는 호구를 착용하고 일정한 길이와 중량의 죽도를 사용한다. 호구는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는 호면, 손목을 보호하는 호완(護腕), 허리와 가슴을 보호하는 갑(甲), 허리와 배를 보호하는 갑상(甲裳)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도의 길이는 대학 ·일반용이 115 cm, 중량이 500 g이다. 경기장은 가로 세로 9~11 m 이내의 정사각형 마루 또는 평탄한 지면이어야 하며, 경기장 외측으로 1.5 m 이상의 여지를 가진 외측선을 설치하게 되어 있다.

시합방법은 개인시합에서는 3판 승부를 원칙으로 하되 시합시간 내에 2판을 먼저 이긴 자를 승(勝)으로 하고, 제한시간 내에 승부가 결정되지 않을 때는 연장전을 하여 먼저 한 판을 이긴 자를 승으로 한다. 단체시합에서는 승자수법(勝者數法)과 연승법(連勝法)이 있는데, 승자수법은 승자의 수에 의하여 단체의 승패를 결정하는 방법이고, 연승법은 승자가 시합을 계속하여 단체의 승패를 결정하는 방법이다.

5인제 시합의 경우, 선봉(先鋒) ·2위(位) ·중견 ·부장(副將) ·주장(主將) 등의 순위로 시합을 한다.


임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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