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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변화
행복한 구미!

구미시체육회

모든 시민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스포츠환경을 조성합니다.

설립목적 및 연혁


본 협회는 꿈나무부터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여 구미 탁구 위상을 높여 체육에 공헌, 엘리트와 생활 탁구를 접목하여 서로간의 긴밀한 협조로 지역 화합과 발전에 기여, 탁구의 저변활대로 시민의 건강증진을 통하여 국력신장에 기여함을 그 목적으로 한다.

탁구는 그 역사나 기원이 정확하지 않은데, 중세 이탈리아의 루식 필라리스라는 유희에서 변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15∼16세기 무렵 프랑스 궁전에서 행해진 폼 이란 놀이가 변하여 탁구가 되었다고도 한다. 남아프리카·인도 등 영국 식민지에 살던 영국인들이 더위를 피하여 실내에서 테니스를 할 수 있도록 유희로 변형시킨 놀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 통설이다. 명칭도 일정하지 않아서 고시마·프림프림·와프와프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탁구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영국의 크로스컨트리 선수인 제임스 깁이 1898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지고 온 셀룰로이드 장난감 공을 영국에서 벌어진 경기 때 사용한 뒤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까지 고시마라고 하던 경기를 핑퐁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송아지 가죽을 붙인 속이 빈 배틀도어 라켓으로 공을 치면, 공이 탁구대와 라켓에 부딪칠 때 '핑(ping)', '퐁(pong)'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그 당시 운동구 상인의 함레상회에서 공을 칠 때 나는 핑퐁 소리를 따서 상호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한국에 탁구가 도입된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왔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1924년 1월 경성일일신문사(京城日日新聞社)가 주최한 탁구대회가 한국 최초의 공식대회이며, 1928년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가 주최한 제1회 조선탁구선수권대회가 한국인이 주도한 최초의 대회였다.

1945년 9월 발족한 조선탁구협회는 1947년 9월 KTTA(Korea Table Tennis Association:대한탁구협회)로 개칭하고, 제1회 전국종합탁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 1950년 4월 ATTF(Asia Table Tennis Federation:아시아탁구연맹)와 ITTF(International Table Tennis Federation:국제탁구연맹)에 가입하여 1952년 11월 싱가포르(Singapore)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 처음 참가하였고, 1954년 1월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에 경기단체로 가맹하였다.

중앙에 네트를 친 탁구대의 양 끝에 선수가 위치한다.게임은 서비스로부터 개시된다. 먼저 한 쪽 선수가 서비스를 하면, 상대편 선수는 자기편 코트에서 1바운드 한 셀룰로이드 공을 라켓으로 쳐서 다시 상대편 코트로 보낸다. 탁구대를 사이에 둔 양측 선수가 번갈아 가면서 공을 주고받게 된다.

탁구경기는 양 쪽에 각각 한명의 선수가 위치하는 단식경기와 두 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루어 두 명의 상대선수와 대결하는 복식경기가 있다. 탁구의 복식경기는 테니스와 달리 한 명의 선수가 공을 연속 두 번 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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