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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체육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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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목적 및 연혁


본 연맹은 역도연맹 설립 및 운영을 통하여 등록팀을 육성하고 우수한 선수 및 지도자를 양성하여 지역 역도발전에 기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극한의 중량을 가진 바벨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 힘을 겨루는 스포츠로, 웨이트 리프팅이라고도 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삼손의 이야기라든가, 괴력(怪力)을 지닌 사나이들이 작은 바위나 큰 통나무 들어올리기를 겨루었다는 이야기 등 오늘날 역도경기의 원형은 유사(有史)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편 중세에 접어들면서 독일에는 힘자랑으로 돌던지기가 있었으나, 이와 같은 돌던지기나 돌들어올리기와 같은 경기는 힘겨루기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고대 올림픽경기에도 서로 맞붙어 싸우거나 때리는 격투기와는 별도로 중량물을 사용해서 힘을 겨루는 경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독립된 경기방법은 없었고, 육상경기의 달리거나 뛰는 경기에 포함해서 실시된 듯하다.

중량들어올리기 경기로서 일정한 규칙이 확립된 것은 19세기부터이며, 그 이전인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시대에 덤벨을 사용하는 운동경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러한 운동이 확실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은 독일의 구츠무츠나 얀에 의해서이며 그의 제자 아이젤렌에 의하여 덤벨 운동의 지도서가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처음에 역기(力技)라고 하였으나 8·15광복 이후부터 역도라고 개칭하였다. 역도가 한국에서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28년 2월 24일 중앙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 체육부가 개최한 제1회 서커스대회에서 현상역기를 즉석 프로그램으로 넣어 7명의 선수가 출전하여 겨룬 것이 최초였다. 1930년 9월에 서상천(徐相天)과 몇몇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중앙체육연구소’라는 이름 아래 20여 평의 도장을 차린 것이 역기운동의 시초가 되었다.

같은해 11월 조선체육회 주최로 제1회 역기대회가 있었으며, 1936년 비로소 조선역기연맹이 조직되었고, 5월 3일 일본에서 열린 제1회 선수권대회에서 김용성(金容星)·김성집(金晟集)이 각각 우승하였다. 특히 1938년 10월의 제3회 일본선수권대회에서는 남수일(南壽逸)이 60㎏급 인상과 추상에서 315㎏을 들어 올려 세계신기록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다른 선수들도 6체급에서 1위를 독점하는 한편 2·3·4위를 차지하였다.

이후 6·25전쟁으로 어려운 역경에 처하였는데도 1952년 제15회 헬싱키(Helsinki)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 미들급(75㎏급)의 김성집이 총 382.5㎏으로 2회 연속해서 3위에 입상하였고, 2명의 선수가 상위권에 랭크되었다. 1956년 제16회 멜버른(Melbourne)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라이트급(67.5㎏)의 김창희가 합계 370㎏으로 3위에 입상하였으며, 그밖의 선수들도 4·5위의 상위권에 진입하였다.

1958년에는 AWF(Asia Weight Lifting Federation:아시아역도연맹)에 가입하였으며, 1950년에서 1960년대까지는 한국 역도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후 국제 스포츠 정보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과학적인 훈련방법을 도입하지 못한 탓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기록이 저조하였다. 그러다가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 이후 차츰 경기력이 향상되어 1992년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경기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제2의 중흥기를 맞이하였다.

사방 4m의 정사각형 링 위에서 바벨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 그 중량의 경·중으로 기록을 겨루는데, 인상과 용상의 순으로 2종목을 치러 그 총 중량으로 승패를 가른다. 인상은 바벨을 폭넓게 쥐고 한동작으로 머리 위까지 끌어올려 그 상태에서 일어서는 것으로, 들어 올린 바벨은 심판이 심봉을 경기대에 내려놓으라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팔과 다리가 쭉 펴지고 발이 동일선상에 있는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부동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용상은 발 앞에 놓인 바벨을 일단 가슴 위까지 끌어올리고, 그 자세에서 몸 전체의 힘을 살려 단번에 머리 위로 뻗어 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동작을 시기(試技)라 하며, 두 종목 모두 3번씩 시기를 하여 그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으로 계산한다.

이밖에 추상이라 하는 프레스가 있는데 용상처럼 2번에 나누어서 들어올리기를 시도한다. 즉 먼저 바벨을 어깨까지 들어 올리며 발동작도 자유롭다. 그뒤 부동의 연속적인 동작으로 팔을 완전히 뻗어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뒤 심판의 경기완료 선언이 있을 때까지 똑바로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벨을 어깨에서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에서 다리를 움직여서는 안된다.

세계신기록이나 한국신기록에 도전할 때는 4번의 번외경기를 허용한다. 시기에서 2회째에 들어갈 때는 5㎏ 이상의 중량을 증가시키는데, 선수는 1회째 시기 때 시작하는 중량을 잘 고려해야 한다. 물론 2회째에 가서 2.5㎏을 신청할 수도 있으나, 역도 규정에 따라 2.5㎏이라는 최소단위의 중량은 최종시기로 간주되기 때문에 2회째에 2.5㎏을 신청했을 경우 자동적으로 3회째의 시기를 포기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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