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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목적 및 연혁


본 협회는 축구협회 설립 및 운영을 통하여 팀을 육성하고 우수한 선수 및 지도자를 양성하여 지역 축구발전에 기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축구의 정식 명칭은 어소시에이션풋볼이다. 그래서 흔히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association’의 ‘soc’를 빼내어 ‘사커(soccer)’라고 부르며, 풋볼이라고도 한다.

BC 7∼6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시대에 행한 에피스키로스라는 공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형식의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대 중국에서는 이보다 먼저 축구형식의 공놀이가 행해졌다는 설도 있다. 그 뒤 로마시대에는 군사경기로 널리 보급되었고, 로마가 영국을 침공하였을 때 하르파스툼이라는 경기를 보급시켜, 이것이 영국에서의 근대 축구의 기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1800년대 영국에서의 풋볼은 무질서한 가운데 행해졌기 때문에 1863년 12월 8일 개최된 제6차 회의에서 협회가 규칙을 통일하고 공인된 규약과 경기규칙을 인쇄하여 발행할 것을 결의하였다.그 결과 협회가 인정하는 경기규칙에 의한 축구가 생겨났으며, 이것이 어소시에이션풋볼의 탄생이다. 영국에서 조직화되고 발전한 축구는 영국에 유학한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고국에 보급되거나, 영국인 목사·선교사·군인·상인들에 의해 세계 각국에 소개되고 보급되었다.

축구는 세계적인 열광 속에 1904년 국제 관리기구로서 FIFA(Federation Internationale de Football Association:국제축구연맹)를 탄생시켰고, FIFA 가입국은 204개국(2003)에 이른다. 범세계적 경기로 행해지고 있는 대회는 올림픽경기대회에서1900년부터 개최되는 축구경기와, 그 중간 해에 4년마다 아마추어나 프로 선수 모두 참가하여 열리는 월드컵축구대회, 월드컵여자축구대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등이 있다.

한국에서 축구가 전파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세기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축구와는 조금 달랐겠지만<삼국사기>에 의하면 먼 옛날 신라시대에도 ‘축국(蹴鞠)’이란 놀이 형태의 공차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삼국통일의 주역인 신라의 김유신과 김춘추가 농주(弄珠)를 가지고 노는 축국을 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축국은 둥근 놀이기구, 이를테면 가축의 방광이나 태반에 바람을 넣어 차거나 던지는 놀이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을 모태로 하는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것은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호스의 승무원들을 통해서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식 축구의 보급은 1904년 서울의 관립 외국어 학교에서 체육 과목의 하나로서 채택하면서부터이다. 한국 최초의 축구 경기는 1906년 3월에 서울 삼선평에서 열린 대한체육구락부와 황성기독청년회간의 시합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 하에 경기에 필요한 각종 장비를 갖추고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부터이다.

특별한 장비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구의 특성은 당시 가난했던 민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으며, 축구 선수에게 필요한 굳센 체력과 강인한 투쟁심은 한국민의 정서와도 일치했다.

여기에 1929년부터 시작된 경성(서울)과 평양의 경평(京平) 대항전은 축구에 대한 관심을 크게 증폭시키며 전 민족이 즐기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축구는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가슴에 쌓인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청량제였고 독립의 희망을 키울 수 있는 싹이었다.

일제 말기 해산되었던 조선축구협회는 해방과 함께 1948년 9월 4일 대한축구협회로 개칭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동시에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했고,1954년에는AFC(아시아 축구연맹)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다.

자랑스러운 한국 축구의 역사는 드디어 세계 축구의 최고 제전인 월드컵 개최로 화려하게 꽃피우게 되었다. 축구 사랑, 나라 사랑의 한마음으로 온 국민이 보여준 뜨거운 열기와 함께 추진된 월드컵 유치운동은 결국 1996년 5월 31일 한국과 일본의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2002년 6월 한 달 한.일 양국은 물론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2002 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참가 사상 첫 승리를 거둔데 이어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잇달아 격파하고 기적처럼 4강에 진출, 한국 축구 100년 역사상 최고의 업적을 이뤄냈다.

축구경기는 1개 팀이 11명으로 구성되고, 그 중 골키퍼만이 다른 경기자와 구별되는 운동복 상의를 착용하여 골키퍼임을 표시한다.

축구는 경기장 안에서 주로 발을 사용하는 구기경기로, 골키퍼에게만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손으로 하는 것이 허용된다. 축구는 상대팀과 대결하여 상대팀의 골안으로 볼을 넣어 많은 득점을 얻는 팀이 이긴다.

볼이 양 골포스트 사이와 크로스바의 아래로 골라인을 완전히 통과했을 때 득점으로 한다. 경기자의 위치와 역할은 행동영역과 시스템의 변화에 따라 다소 달라지지만, 일반적으로 기본 형태에서 경기자의 위치와 명칭은 골키퍼(GK)·라이트 풀백(RB)·레프트 풀백(LB)·라이트 하프백(RH)·센터 하프백(CH)· 레프트 하프백(LH)·라이트 윙 포워드(RW)·라이트 인사이드 포워드(RI)·센터 포워드(CF)·레프트 인사이드 포워드(LI)·레프트 윙 포워드(LW)가 있다. 아무리 수준이 높은 작전이라 하더라도 경기자 각자가 작전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라면 아주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작전을 세우는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경기자가 그 작전과 시스템을 이해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이어야 팀을 위한 것이 된다.각 경기자의 위치 배정과 움직임에 따른 기본적 형태를 시스템이라고 한다.

4·2·4 시스템은 4명의 공격 플레이어와 4명의 수비진 사이에 공격의 시발점이 되고 수비의 제1선이 되는 2명의 플레이어를 배치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수비력을 강화하려는 전술을 감안하여 만든 전법이다. 스위퍼 시스템은 수비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4명의 백진(陣)의 후방에 또 다른 플레이어 1명을 배치하여, 4명의 수비 중 어느 한 사람이 돌파되면 그 돌파되는 곳을 뒤에 있는 수비자가 재차 방어하는 수비 작전이다.1·4·2·3 시스템이라고도 한다.

4·3·3 시스템은 수비 위주로 해서 생기는 공격력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한 작전이며, 하프진의 3명이 경기운영의 핵이 된다. 특히 4명의 풀백 진영과 3명의 하프진이 수비진을 구축함과 동시에 공격할 때는 3명의 포워드진과 3명의 하프진이 합세하여 공격력을 증가시키며, 최후 수비진의 플레이어가 공격에 가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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